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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vs ‘배신’…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지명 정치권 파장

박지혜 기자
2025-12-29 07:19:37
‘통합 정점’ vs ‘배신 행위’…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지명 정치권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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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vs ‘배신’…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지명 정치권 파장 (사진=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이 28일 신설 기획예산처 초대 장관 후보자로 국민의힘 출신 이혜훈 전 의원을 전격 지명하면서 정치권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보수 정당 3선 의원 출신을 정부 ‘곳간 열쇠’를 쥔 핵심 경제 요직에 기용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서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에 이혜훈 전 의원을 지명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장관급)에는 김성식 전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명됐다.

이 수석은 “이번 인사가 ‘통합’과 ‘실용’이라는 이 대통령의 인사 철학에 기반한 것”이라며 “이분들은 경제, 예산 분야에 누구보다도 전문가들로 꼽히는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UCLA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냈다. 17·18·20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대표적인 보수 진영 경제 전문가로 꼽힌다.

김 부의장 역시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18·20대 국회에서 기획재정위 간사, 4차산업혁명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은 정책통이다.

이번 인선이 파격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두 인사 모두 보수 정당에서만 다선 의원을 지낸 중진급 인사라는 점 때문이다.

특히 이 후보자는 지난해 총선에서 서울 중·성동 을에 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고, 현재도 해당 지역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태여서 충격은 더 컸다. 올해 대선에서는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캠프에서 정책본부장을 맡기도 했다.

보수 진영 인사의 이재명 정부 합류는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국민통합비서관에 이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의 주요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핵심 부처의 수장으로 보수 정치인을 기용했다는 점에서 이번 인사의 파급력은 이전보다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통령실은 이 후보자가 당시 보수 정당에서는 혁신적인 정책을 주장했던 만큼 현 정부와의 호흡을 맞추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 수석은 “이 후보자가 경제민주화 철학에 기반해 최저임금법, 이자제한법 개정안 등을 대표발의하고, 재벌의 불공정거래 근절과 민생 활성화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고 소개했다.

이 후보자도 입장문에서 “경제와 민생 문제 해결은 본래 정파나 이념을 떠나 누구든지 협력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 저의 오랜 소신”이라며 “성장과 복지 모두를 달성하고 지속 성장을 이뤄내야 한다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 목표는 평생 경제를 공부하고 고민해 온 저 이혜훈의 입장과 똑같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후보자가 과거 대선 당시 기본소득을 비판하고 이 대통령을 향해 “추진력이 있는 후보가 만약에 대통령이 되면 재앙이 된다”고 우려했던 발언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쟁점이 될 전망이다.

더 큰 논란은 이 후보자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활동이다. 이 후보자는 올해 1~3월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해 “탄핵소추 절차 자체가 불법”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윤준병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 외치고 윤석열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후보자에게 정부 곳간의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의 파기”라고 비판했다. 이언주 최고위원도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의 대상이어야 하는가는 솔직히 쉽사리 동의가 안 된다”고 밝혔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SNS에 관련 기사를 공유하며 “이 후보자는 윤석열과 결별했는지 국민에게 즉각 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2차 내란특검 하고 내란정당 해산시키겠다면서, ‘계엄 옹호’ ‘윤 어게인’ 하는 사람을 핵심 장관으로 지명하는 이재명 정권”이라며 “도대체 정체가 뭐냐”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즉각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이 후보자를 제명했다. 국민의힘은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이재명 정부의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과 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 행위를 했다”며 “나라 곳간을 책임지는 국무위원직을 정치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이 대통령과 이 전 의원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말은 보수에 있었고, 선택은 권력으로 향했다”며 “윤 어게인을 외치던 이혜훈 전 의원이 이재명 정권의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된 것은 정치적 신념과 일관성을 스스로 무너뜨린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도층 표심을 끌어오기 위한 포석을 펼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능력에 따라 누구든 기용할 수 있다는 포용력을 보임으로써 중도를 넘어 중도 우파까지 포섭하려는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방선거를 대비한 움직임이라거나 정계개편에 나섰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면서도 “통합의 대상이고, 이미 능력이 검증된 인물이라면 다른 정당 출신이라도 쓰지 못하란 법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 후보자가 여러 논란이 있는 것을 알고 있고 우려도 있지만 그럼에도 지명된 건 이 대통령이 원한 것”이라며 “탄핵 반대 발언을 했으나, 적극적으로 한 건 아니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에 핵융합 연구 전문가인 이경수 인애이블퓨전 의장을, 국토교통부 2차관에 홍지선 경기 남양주시 부시장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에 김종구 전 농식품부 식량정책실장을 각각 임명했다.

또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에는 6선의 조정식 민주당 의원을, 정책특별보좌관에는 이한주 경제·인문사회연구원 이사장을 각각 위촉했다.​​​​​​​​​​​​​​​​

박지혜 기자 bjh@bntnews.co.kr